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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료(학급,수업운영)/아름다운글

동물의 세계에서 배우는 혁신의 지혜

by 민서아빠(과학사랑) 2013. 6. 2.

1.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한 마리 생명력 있는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주면 1회용 계란후라이!"

사람은 누구나 自己만의 아집과 편견과 고정관념의 껍질에 둘러 쌓여 있다.
스스로 구속하는 비좁은 마음 속에서 답답함을 못 이겨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자기 혁신은 바로 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서부터 出發한다.
조직혁신 역시 이 벽을 깨야만 가능하다.
의식의 벽, 제도의 벽, 관행의 벽, 조직의 벽 등등 우리 조직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벽이 있는가?

문제는 나이가 많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그 벽이 두텁다는 것이다.
그 두꺼운 껍질은 누구도 다른 사람이 깨주기 어렵다.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부화과정이 바로 「自性反省」이다.
철저한「自性反省」없이 자기혁신, 조직혁신은 불가능 하다.

(kosoo.net '반성의 힘'에서)

2. 코끼리 아저씨의 족쇄

여기 뒷다리에 5cm의 족쇄를 차고 있는 완전히 다 큰 코끼리가 있다.
그 족쇄는 2m길이의 사슬에 연결되어 있고, 그 사슬은 땅에 박혀 있는 말뚝에 묶여 있다. 코끼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 정도의 말뚝은 뽑아 낼 수 있다. 그러나, 코끼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코끼리가 사슬에 묶였던 때는 아주 어렸을 때였고 그 때는 그것을 움직일 만큼 힘이 세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말뚝을 뽑아 내려고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얼마 안 가서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자기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힘이 세어졌을 때도, 코끼리는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건초, 물, 그리고 이따금씩 땅콩을 얻을 수 있는 약 6피트 정도의 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것에 만족하며 지낸다. 코끼리들은 자기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말뚝에 묶여 있으면서도 불이 날 경우 도망도 못 가고 그냥 죽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밥 좀머, <사이코 사이버네틱스 2000>에서)

이 이야기는 자신의 고정관념, 타성, 선입견 등에서 벗어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의 10%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그어 버린 코끼리의 족쇄를 우리들도 차고 있지는 않은가?

3.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한 남자가 새를 잡으러 숲으로 갔다. 남자는 어린 독수리를 잡아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닭과 오리가 들어있는 우리에 넣고 닭모이를 줘서 키운다. 5년 후 독수리는 3m나 되는 날개를 갖고도 날지 않는 닭이 되어 있었다.

우연히 이 집을 들른 동물학자는 독수리를 다시 날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닭모이에 만족한 독수리는 날기를 거부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동물학자는 독수리의 몸에 독수리 정신 대신 닭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어느 날 그는 아침해가 떠오르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웅장한 자연 앞에 독수리를 세운다. 문득 용솟음치는 힘! 독수리는 대지를 발판 삼아 힘차게 비상한다.

(제임스 애그레이,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에서)

이 이야기 속에는 틀 안에 머물지 말고 빗장을 풀어 세상을 경험하고 그 경험 속에서 부딪치는 좌절을 이겨내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우리는 너무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이 독수리와 같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4. 조개론-변화의 대열에 함께 서자

바닷속의 조개는 주위가 조용하면 기어나와 활동을 시작하지만 시끄러우면 두꺼운 껍데기를 꼭 닫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흔히 '태풍이 지나갈 때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관적 자세야말로 자신을 망치고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일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삼성 신경영」이라고 이름지은 이 변화는 국내외에서 많은 기대와 함께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러한 때어 삼성인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바닷속의 조개처럼 뚜껑을 닫고 숨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은 그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무겁고 두꺼운 껍데기를 과감히 깨뜨려 버리고 '변화의 대열'에 같이 서야 할 때입니다.

(이건희 회장, <신경영어록>中에서)

5. 벌과 파리의 환경대응 방식

몇 마리인가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병 속에 넣어 바닥을 창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 놓는다. 그러면 벌은 밝은 방향에서 출구를 찾다가 끝내 지치거나 굶어 죽을 때까지 병 밑바닥에서 악전고투 한다. 이에 비해 파리는 2분도 채 되지 않아 반대쪽 병 주둥이로 나가 버린다.

‥ 이 실험에서 벌이 빛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하여 항상 그 쪽으로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벌의 높은 지능이 오히려 우환이 된 것이다. 벌은 가두어 두면 가장 밝은 쪽에 반드시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너무나도 논리적인 행동을 취하고 만다. 벌에 있어서 유리병은 여지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어려운 응용 문제가 되는 것이다.

벌은 이렇듯 갑자기 나타난 돌파할 수 없는 벽에 멈추어 버리고 만다.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렇듯 익숙하지 못한 장벽은 보다 비논리적이며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파리는 유리의 불가사의한 것 등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빛의 방향 같은 것도 고려에 넣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날아다닌다. '단순한 자에게는 행운이 기다린다.'는 격언 그대로 이내 반대쪽에 부딪쳐 출구를 발견하여 자유스러운 몸이 되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험>,<지속>,<시행착오>, <리스크>, <임기응변>, <우회>, <혼란>, <고집>, <어림짐작> 등의 요소가 총 동원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에서)

6. 고슴도치와 여우의 전략

유명한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고대 그리스 우화를 토대로 세상 사람들을 고슴도치들과 여우들로 나누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안다."

여우는 고슴도치를 기습할 복잡한 전략들을 무수히 짜낼 줄 아는 교활한 동물이다. 날이 밝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여우는 고슴도치 굴 주변을 빙빙 돌며 고슴도치를 덮칠 완벽한 순간을 기다린다. 민첩하고 늘씬하고 잘생기고 발빠르고 간사한 여우가 확실한 승자일 것 같다. 반면에 고슴도치는 호저와 작은 아르마딜로를 유전자 합성해 놓은 것 같은 촌스러운 동물이다. 놈은 어기적어기적 점심거리를 찾아다니고 집을 돌보며 단순한 일상에 열중한다.

여우는 갈림길에서 교활한 침묵 속에 고슴도치를 기다린다. 고슴도치가 제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여우가 숨어 있는 바로 그 곳으로 다가온다. '야, 이제 잡았다!'고 여우는 생각한다. 여우가 후닥닥 뛰쳐나가 번개처럼 땅을 가로지른다. 위험을 느낀 작은 고슴도치는 여우를 올려다보며 '또 만났군. 아직도 덜 배웠나?'하고 생각한다.

고슴도치는 몸을 말아 동그란 작은 공으로 변신한다. 공 둘레에는 작은 가시가 사방으로 돋아나 있다. 사냥감 앞으로 달려온 여우는 고슴도치의 방어 태세를 보고 공격을 멈춘다. 여우는 숲 속으로 퇴각하여 새로운 공격 전략 구상에 착수한다.

고슴도치와 여우 사이에 이런 싸움의 비슷한 버전들이 매일같이 펼쳐지는데, 여우가 훨씬 교활함에도 이기는 건 늘 고슴도치다.

벌린은 이 작은 우화에 비유하여 사람들을 두 가지 기본그룹, 즉 여우와 고슴도치로 나눈다. 여우는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그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핀다. 그들은 '어지럽고 산만하고 여러 단계를 오르내리는'탓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하질 못한다고 벌린은 말한다.

그에 반해 고슴도치는 복잡한 세계를,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안내하는 단 하나의 체계적인 개념이나 기본원리 또는 개념으로 단순화한다. 고슴도치는 세상이 제 아무리 복잡하건 관계없이, 모든 과제와 딜레마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고슴도치 컨셉으로 축소시킨다.
고슴도치는 고슴도치 컨셉에 다소나마 부합하지 않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프로이트와 무의식, 다윈과 자연선택, 마르크스와 계급투쟁,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애덤 스미스와 분업-그들은 모두 고슴도치들이었다. 그들은 복잡한 세계를 해석하여 그것을 단순화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고슴도치는 멍청한 게 아니다. 그 정반대다. 그들은 심원한 통찰의 본질은 단순함이라는 걸 이해한다. 그들은 복잡한 속을 뚫고서 그 바탕에 깔린 패턴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본질적인 것을 보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모두 고슴도치였다. 그들은 자신의 고슴도치 속성을 활용하여 우리가 고슴도치 컨셉이라고 부르게 된 것을 자기네 회사들에다 밀어붙였다. 비교 기업의 리더들은 여우 같은 속성이 있어 고슴도치 컨셉의 분명한 장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지럽고 방만하고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에서)

7. 개미와 거미의 일하는 방식

짐승들은 떼를 지어 살긴 하지만 가끔 자기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벌이나 개미는 분업체제로 조직되어 있어서 전원이 생산을 향해서 집단적으로 움직입니다. 개체란 없지요. 그러니까 무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벌과 개미를 본받으라고 가르쳐 왔지요. 이솝우화 때부터 동요와 동화가 늘어린이들에게 그렇게 속삭여 왔지요. 개미는 베짱이를 이기고, 꿀벌은 '비지비지(busy busy)' 라고 날개짓을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의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고대사회, 고대국가에서는 개인이라는 것이 없는 벌과 개미처럼 살아왔지요. 지금은 아니지요. 근대국가는 개미와 꿀벌같은 세계에서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꿀벌의 조직, 개미의 집단 노동을 부러워 마세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도 무인도를 개척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미래의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지금, 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은 일렬로 늘어선 벌과 개미가 아니지요.

인터넷의 www.는 world wide web -- 세계에 널리 깔린 거미줄이란 뜻이지요. 지구에 쳐진 거대한 은빛 거미줄 위에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꿀벌과 개미의 시대에서 거미의 시대로 세계가 변한 것입니다.

(이어령의 "천년을 만드는 엄마"에서)



8. 개미와 베짱이의 노동관

□ 일본편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 갔다. 그런데 아뿔사! 여름 내내 오로지 일만 했던 개미들이 모두 과로하여 과로사 하였더라~는 것이다.
(일만 할 줄 알고 놀 줄 모르는 일본인을 빚댄 우화)

□ 소련편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 갔다. 개미는 우리 형제동무들이 왔다고 식량을 모두 거저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며칠 후 식량이 거덜나 개미도 베짱이도 모두 죽었다고 한다.
(나눔,평등이라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경쟁,생산성이 없는 공산주의를 빗댄 이야기)

□ 미국편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갔다. 베짱이는 개미들을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 준다. 그리고 개미들께 요구한다. Ticket please! 그래서 개미도 살고 베짱이도 사는 상생의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창의성은 오히려 베짱이에게서 나온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9. 새끼 거북의 역할분담과 협력

바다거북은 산란기가 되면 바닷가로 올라와 500개에서 많게는 1000개에 이르는 알을 낳는다. 어미 거북은 먼저 모래 속 깊이 구덩이를 판 다음 100개 정도의 알을 무더기로 낳은 후 모래를 끌어 모아 그 위를 덮는다. 이런 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알을 낳는다.

이렇게 무더기로 낳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들은 어떻게 모래 웅덩이를 빠져 나올까? 100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뒤엉킨 상태에서 과연 그 좁은 구덩이를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동물학자들이 관찰한 결과 새끼 거북들이 역할 분담과 협력을 통해 빠져 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구덩이에서 막 깨어난 새끼들 중 꼭대기에 있는 녀석들은 천장을 파고, 가운데 있는 것들은 벽을 허물고, 밑에 있는 새끼들은 떨어지는 모래를 밟아 다지면서 다 함께 모래 밖으로 기어 나오더라는 것이다.

또 실험하면서 알을 한 개씩 묻어 놓았더니 27%, 두 개씩 묻어 놓았을 때에는 84%, 네개 이상을 묻어 놓으면 거의 100%가 알에서 깨 구덩이 밖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이처럼 새끼 거북들은 협력을 통해 구덩이에서 대탈출 하는데 성공한다.

오늘날 세계의 흐름 역시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 경쟁자에게서 내 것을 주고 협력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사정을 돌아보면 우리는 아직도 좁은 테두리의 소모적 상쟁(相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이를 키우기 보다 얼마되지도 않은 파이를 나누는데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10. 개미의 2.6.2 법칙

개미가 모두 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렇지가 않다.

20%는 매우 열심히 일하고, 60%는 보통 그리고 나머지 20%는 게으름을 피운다고 한다. 매우 열심히 일하는 20%의 개미들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중 20%는 매우 매우 열심히 일하고 60%는 매우 열심히, 20%는 좀 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2.6.2 법칙이 나왔다.
(상위 20%가 전체의 80% 업적을 올린다는 20:80 法則도 이와 유사하다.)

그런데 인간 조직 속에도 이 2.6.2 법칙은 통용된다. 어느 조직이든 매우 우수한 20%의 집단이 있고, 보통의 60%집단, 그리고 20%의 열등의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경영 관리자는 상위 20%가 누구인지를 찾아내 포상해 주고 중위 60%가 누구인지 찾아내 분발토록 격려하며 하위 20%에 대해 다른 대안을 찾도록 하여야 한다.

(kosoo.net 에서)

출처 :  다음 신지식